용접흄은 신장암을 유발한다. 한때는 모호한 의심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과학적 증거와 법적 판결이 뒷받침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 글은 용접흄과 신장암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는지, 그 길고 치열했던 규명의 역사를 추적한다.초기 연구의 초점: 호흡기계 유해인자로서의 용접초기 산업 현장에서 용접의 위험은 폐암으로 한정됐다. 스테인리스강 용접 시 발생하는 6가 크롬과 니켈이 명백한 폐암 유발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신장암은 부수적인 발견으로만 간혹 언급될 뿐, 주요 연구 대상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소 같은 현장에는 여러 발암물질이 뒤섞여 있었다. 단열재 속 석면·높은 흡연율·금속 세척에 쓰이는 유기용제(TCE) 등 다른 강력한 발암물질들은 용접흄과 신장암 사이의 명확한 연결고리를 찾아내기 어렵게 만들었다.최초의 공식 경고: 불완전했던 1990년 IARC 평가그러던 1990년, 최초의 공식 경고가 울렸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용접흄을 '인체 발암 가능 물질'(Group 2B)로 공식 분류했다. 용접흄을 국제적인 직업성 발암물질 목록에 처음으로 올린 상징적 조치였다. 그러나 이 평가는 철저히 폐암 중심이었고, 신장암에 대한 어떠한 평가나 논의도 없었다. 당시 과학계가 신장암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후 30년간 이어질 연구의 필요성을 알리는 불완전한 출발점이었다.결정적 전환점: 2017년 IARC 재평가1990년 용접흄이 Group 2B로 분류된 이후 용접흄의 건강 영향에 대한 수많은 새로운 역학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특히 암 위험이 스테인리스강 용접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증거와 새로운 기전 연구들이 축적되자, 2014년 IARC 자문 그룹은 용접흄을 재평가가 시급한 최우선 순위 물질로 지정했다. 마침내 2017년 3월,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프랑스 리옹에 모인 IARC 실무 그룹은 27년간 쌓인 새로운 증거들을 바탕으로, 모든 종류의 용접흄을 폐암을 유발하는 ‘인체 발암성 물질(Group 1)’ 즉 ‘1급 발암물질’로 등급을 상향했다.더 중요한 것은 신장암에 대한 평가였다. IARC는 북유럽 5개국 코호트 연구, 캐나다 코호트 연구 등 여러 대규모 연구를 바탕으로 신장암에 대해 ‘제한적 증거’가 존재한다고 공식적으로 결론내렸다. 이는 ‘과학적 의심’ 단계를 넘어, 세계 최고 권위 기관이 인정한 ‘개연성 있는 위험’으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했다.과학이 바꾼 판결: 2003년의 ‘거절’, 2024년의 ‘인정’이러한 과학적 진실은 노동자의 삶을 바꾸었다. 2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산재 판정이 이를 증명한다. 2003년, 화력발전소에서 19년간 일한 용접공 A씨가 신장암 산재를 신청했다. 그는 다량의 용접흄과 금속 분진에 노출된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의 결론은 냉정했다. "용접흄이 신장암의 원인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산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의 법적, 과학적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20여 년이 흐른 2024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조선소에서 약 42년간 일한 용접공 B씨가 신장암 산재를 신청했다. 이번에 공단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용접흄은 신장암과 연광성이 보고되고 있으며, 업무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밝힌 것. 마침내 신장암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두 사례의 명암을 가른 것은 바로 그 사이 축적된 과학적 증거의 무게였다. 2003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제한적 근거'라는 IARC의 공식 평가가, 2024년에는 한 노동자의 삶을 구제하는 결정적 열쇠가 된 것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직업성 암 연구가 국제기구를 거쳐, 대한민국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근거가 된 극적인 과정이다.이제는 행동으로 증명할 때다. 용접흄과 신장암의 연관성을 둘러싼 과학적 탐구는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제 용접흄과 신장암의 관계는 더 이상 의심의 영역이 아니다. 산업현장은 국소배기장치 설치와 같은 공학적 통제, 개인 보호 장비 착용 등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조치를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 과학적 증거는 명확하다. 이제는 행동으로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할 때다.박도연 노무법인 이산 암산재연구소장 (pdy86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