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신규환자 약 3만명, 전체 암 발생 5위. 위암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는 ‘국민 암’이다.
위암 진단을 받으면 우리는 짠 음식, 불규칙한 식습관부터 되돌아본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예상치 못한 곳, 바로 매일 숨 쉬는 일터의 공기일 수 있다.
소리 없이 우리 몸에 쌓이는 분진과 유해물질이 그 주범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공장과 건설현장을 위협하는 발암물질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위암을 유발하는 명백한 원인으로 고무 제조업과 X선·감마선을 지목한다.
고무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정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직업군이 여기에 해당한다.
석면과 역시 위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위험은 특정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연구에서 건설현장이나 광산, 가구·제지 공장처럼
분진에 쉽게 노출되는 작업 환경에서 노동자의 위암 발생 위험이 꾸준히 증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드러난 위험: 산재로 인정된 위암 사례들
국내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한 전기공 사례는 석면과 위암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간 전기공으로 일한 A씨는
2017년 3월, 직장인 건강검진에서 위암 의심 소견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학병원 검사 결과 암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그는 곧바로 위 절제술을 받았다.
하지만 암은 림프절까지 전이돼 이후 1년6개월간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
A씨의 주된 업무는 선박 내부의 전기 배선을 설치하고 보수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석면이 다량 함유된 천장재(텍스)나 칸막이를 수시로 자르고 뚫어야 했고,
보이지 않는 석면 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30년간의 전기공 업무 중 누적된 석면 노출량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고, A씨의 위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광산노동자 B씨의 사례는 직업성 위암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강원도 태백의 한 광업소에서 198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일했던 B씨는
마지막 5년은 굴진(굴을 파는 작업) 계장을 맡을 정도로 성실하게 근무했다.
B씨는 지하 밀폐된 갱도에서 굴을 뚫고 발파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암을 유발하는 결정형 유리규산(돌·흙·모래분진 등)과 탄분진에 노출됐다.
퇴직 후 10년이 훌쩍 지난 2015년, B씨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위 전체와 식도 하부까지 절제하는 대수술과 이어진 항암치료 끝에 2020년 10월, 기적 같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B씨가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과정이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의 직업성암 인정기준에는 탄분진이나 결정형 유리규산이 위암의 유해요인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단은 최신 연구 결과들이 두 물질과 위암의 연관성을 꾸준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B씨의 위암을 오랜 기간의 분진 노출에 따른 직업성 암으로 최종 인정했다.
호흡기로 들어와 위에 쌓이는 독소
식단 관리 넘어 작업환경 개선으로
직업성 위암의 발생 원리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호흡기로 흡입된 석면·목재·시멘트 등의 미세 분진이 완전히 배출되지 않고 위장관으로 넘어가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암세포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코와 입으로 들어온 독소가 위에 직접 쌓여 발암인자로 작용하는 셈이다.
위암과의 싸움은 식단 조절을 넘어, 내 일터의 공기를 바꾸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건강은 개인의 습관뿐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작업 환경과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무법인 이산 암산재연구소장 (pdy86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