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수술실, 마취통증의학과 시술실, 혈관조영실 등 ‘C-arm’이라 불리는 이동형 엑스레이 장비는 이제 현대 의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장비가 됐다.
의사들은 이 장비가 보여주는 실시간 영상을 보며 환자의 생명을 구한다.
문제는 납 방어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의사의 손, 팔, 얼굴이 방사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한 번의 노출량은 미미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 년간 그 미미한 양이 쌓이면 피부 세포 DNA는 손상되고, 결국 ‘피부암’으로 발현될 수 있다.
납 가운 속 무방비 지대, 손·얼굴 타깃
시술 도구를 잡고 정밀한 조작을 해야 하는 손과 팔, 모니터를 확인해야 하는 얼굴과 목은 방사선에 가장 직접적이고 빈번하게 노출된다.
방사선은 피부 표피층에 직접적인 DNA 손상을 일으킨다.
이 손상이 수십 년간 누적되면 결국 피부암인 기저세포암이나 편평세포암을 유발한다.
특히 실시간 엑스레이 영상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영상의학과·정형외과·마취통증의학과·신경외과·심장내과 의사들은 최고 위험군에 속한다.
수술실에서 시작된 암: 의사들의 산재 기록
이러한 위험은 실제 산재로 인정된 의사들의 사례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33년간 정형외과 의사로 일해 온 A씨의 양손에 피부암(기저세포암·편평세포암)이 발병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연평균 300건이 넘는 수술에서 C-arm을 사용했고, 납 장갑의 불편함 때문에 맨손으로 방사선에 노출된 채 수술을 집도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의 연평균 피폭량이 723밀리시버트(mSv)에 달한다는 점을 근거로, 33년간 축적된 방사선이 암의 원인임을 명백히 인정했다.
13년간 척추 주사치료를 전문으로 한 신경외과 의사 B씨의 사례는 더 직접적이다.
그는 C-arm 영상을 보며 주사바늘을 잡은 손가락에 피부암(편평상피세포암)이 발생했다.
조사 결과 그의 손이 받은 방사선량은 최대 9천451밀리시버트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고,
암 발생 인과확률은 최대 60%를 넘었다.
공단은 업무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기록되지 않는 피폭, 개인선량계의 사각지대
방사선 작업 종사자는 법적으로 ‘개인피폭선량계’를 의무 착용해야 한다.
개인피폭선량계는 노출량을 기록하는 개인별 블랙박스이자, 질병 발생 시 업무관련성을 입증하는 거의 유일한 공식 기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 허점이 있다.
많은 의료진이 이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거나, 규정대로 가슴에 착용하더라도 정작 가장 많이 노출되는 손과 얼굴의 피폭량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상의학과 의사 C씨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11년간 3만7천건이 넘는 시술을 한 그의 손가락에도 피부암이 발생했지만 공식 기록만으로는 피폭량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사팀이 병원 환경과 그의 막대한 시술 건수를 바탕으로 피폭량을 과학적으로 재추정한 결과,
연간 최대 1천밀리시버트에 달하는 방사선 노출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의 암은 ‘기록되지 않은 위험’이 재조사를 통해 입증된 대표 사례가 됐다.
독일처럼 국가가 기록해야 진짜 보호가 시작된다
의료진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고 병원이 안전관리를 강화해도 근본적 한계는 분명하다.
수십 년간의 피폭량을 개인이 스스로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고 의료진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추정의 원칙’ 도입이다.
일정 기간 이상 특정 시술에 종사한 의사에게 관련 암이 발병하면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추정하는 방식이다.
둘째, ‘국가 주도의 건강영향 장기 추적 시스템’ 구축이다.
독일 연방방사선방호청(BfS)처럼 국가가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평생 누적 피폭량을 직접 관리하면,
노동자는 이직이나 폐업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기록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한국의 현행 의료법 체계는 피폭 주체인 ‘사람’이 아닌 ‘장비’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간 피폭선량 한도는 존재하지만, 정작 의료진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구체적 규정과 감독체계는 부족한 실정이다.
장비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근본적 법체계 전환이 시급하다.
박도연 노무법인 이산 암산재연구소장 (pdy86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