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단 하루의 노동, 벼 수매 현장서 숨진 60대 근로자 ‘산재 인정’

  • 관리자
  • 작성일 : 2026.02.12
  • 조회수 : 126

2024년 11월, 수능 전날의 비교적 포근했던 가을날. 60대 후반의 A씨는 오랜만에 일터로 향했다.
1년에 단 두 번, 마을의 큰 행사인 ‘벼 수매’ 작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마지막 출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 평소 건강하던 60대, 26톤의 무게 앞에 쓰러지다

경북의 한 농협 창고. A씨를 포함한 4명의 작업자는 당일 오전부터 2,500여 포대의 벼를 적재하는 고강도 작업에 투입됐다.
최근에는 지게차를 이용한 ‘톤백’ 작업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40kg 쌀 포대를 사람이 직접 어깨에 메고 20층 높이까지 쌓아 올리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A씨는 오후 2시경, 약 3~4m 높이의 벼 포대 탑 위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 소리 없이 쓰러졌다.
동료들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당일 그가 옮긴 벼 포대만 약 600~700개. 무게로 따지면 무려 24~26톤에 달하는 압도적인 양이었다.
2L 생수 20개들이 묶음을 600번 넘게 나른 것과 맞먹는 강도다.


- 90% 막힌 혈관, ‘개인 질환’인가 ‘업무상 재해’인가

사건 초기, 산업재해(산재_ 승인 전망은 불투명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A씨의 심장 혈관은 죽상경화증으로 인해 이미 80~90%가 폐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대개 이러한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업무 때문이 아니라 원래 앓던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김하람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이산)는 관점을 완전히 뒤집었다.
‘단 하루만 일했다’는 약점을 오히려 ‘신체가 적응할 시간조차 없었던 급격한 업무 부담’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새롭게 해석해 낸 것이다.

“평소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운동장 20바퀴를 뛰면 몸에 무리가 가는 것과 같습니다.
고령의 재해자가 평소 수행하지 않던 40kg 중량물 취급이라는 고강도 노동에 갑자기 노출된 것은
신체 적응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급격한 환경 변화였습니다”


- 질병판정위원회를 움직인 ‘쌀 포대’와 ‘손 갈고리’

승부수는 질병판정위원회 심의 당일에도 이어졌다.
담당 노무사는 말로만 설명하는 대신,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40kg 쌀 포대와 손 갈고리를 직접 챙겨가 위원들 앞에서 작업 모습을 시연했다.

15~20년 전 영상밖에 남아있지 않은 희귀한 작업 방식을 직접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60대 노인이 감당해야 했던 노동의 실체를 각인시킨 것이다.


- 손자와 산책하던 평범한 할아버지. 가족의 눈물 닦아준 산재 승인

A씨는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매일 산책을 하던 건강한 가장이었다.
사건 진행 중 유가족이 보여준 사진 속에서 A씨는 손자를 목말 태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로 깊은 슬픔에 잠겼던 유가족에게 이번 소식은 고인의 노고를 확인받음으로써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사건을 담당한 김하람 노무사는
“어제까지 건강하셨던 재해자분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상황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어 감사할 뿐”이라며,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전달해 억울한 노동자가 없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기저질환이 있더라도
단기적인 업무강도가 신체의 한계를 넘었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중요한 선례를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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