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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의 새로운 질문 “왜 작업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봐야 하는가”

  • 2026.05.27 12: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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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작업자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는가.” “왜 그 순간 잘못된 판단을 했는가.” “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는가.”

그리고 대부분의 조직은 같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안전교육을 강화하라.” 그러나 오늘날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현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과연 교육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는가?.”


최근 산업안전 분야에서 주목받는 인간공학, 회복탄력성 공학, Safety-IV 이론은 이 오래된 전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인지과학자 Edwin Hutchins이다.


허친스는 현대 산업안전의 사고 원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꾼 학자다. 그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이 개인의 머릿속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전통적인 심리학 관점을 부정했다.

대신 인간의 인지는 사람, 도구, 환경, 조직, 절차, 데이터가 서로 연결된 전체 시스템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분산인지 이론이다. 


특히 그의 대표 저서인 현장 속 인지는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다.

이 저서는 인간의 판단과 사고를 개인 내부의 문제로 보던 전통적 관점을 넘어 사람·도구·환경·조직이 결합된 전체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시켰으며,

오늘날 항공·원자력·철도·건설업·제조업 등 고위험 산업 전반의 안전관리체계와 인간공학, 회복탄력성 공학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허친스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매우 본질적이다.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그는 사고가 인간의 두뇌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기판과 작업표준서, 무전기와 체크리스트, 동료와 관리자 간에 소통하면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즉 인간은 혼자 판단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미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판단한다. 


허친스는 실제 미 해군 함정의 항해시스템을 장기간 관찰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배의 위치를 계산하는 ‘단 한 명의 전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좌표를 읽고 누군가는 차트를 표시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장비 상태를 확인했다. 정보는 사람과 도구 사이를 이동했고, 판단은 여러 단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됐다.


즉 항해라는 고도의 판단은 특정 개인의 직관이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도구–환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집단적 인지 시스템의 결과였다.

이러한 관점은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기존 안전관리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전통적인 안전관리 체계에서는 사고 원인을 주로 작업자의 부주의, 판단 착오, 규정 미준수 등 개인의 실수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분산인지 관점에서 사고는 특정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정보 전달 체계와 작업의 흐름, 조직 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인간과 설비·환경 사이의 인지 연결망의 단절되거나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실패로 이해된다.


“작업자가 방심했다.”, “운전자가 절차를 위반했다.”, “관리감독자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허친스는 사고의 본질이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인지 연결망의 붕괴라고 보았다. 정보 전달 체계가 끊기고 작업 흐름이 단절되며 설비와 작업순서 및 절차가 실제 현장과 어긋나는 순간 시스템 전체의 인지 기능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최근 안전학계에서 강조하는 Safety-IV 및 회복탄력성 공학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Safety-I가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했다면 Safety-IV는 “왜 평소에는 사고 없이 작동하는가”에 주목한다.

즉 안전은 단순히 규정을 지키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이 끊임없이 적응하며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체계인 SMBD(Safety Management Based on Data)는 허친스의 분산인지 이론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즉, 실시간 데이터, 작업의 흐름, 아차 사고, 설비의 상태, 작업자 행동 패턴을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시스템 전체의 위험 상태를 파악하려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위험은 더 이상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가령, 건설현장에서 혼재작업이 증가하고 신규 작업자가 반복 투입되며, 설계 변경과 공정 압박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작업자의 집중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보 흐름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인수인계가 누락되고, 위험 신호가 전달되지 않으며, 작업자 간의 공통 상황인식이 저하되거나 붕괴된다.


결국 사고 직전의 순간은 개인의 실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시스템 전체의 인지 연결망이 붕괴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은 국내 산업현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여전히 많은 사업장에서 안전관리의 핵심을 교육 이수 여부에만 두고 있다.

물론 안전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교육만으로 복잡한 산업현장의 위험을 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반복해도 작업의 흐름과 정보전달의 체계, 인터페이스 설계, 조직 문화, 데이터의 전달 구조가 불안정하면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 국제 안전공학저널에 회복탄력성 공학 분야에서는 인간을 단순한 실수의 원인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시스템을 정상 상태로 복원하고 위험을 흡수·조정하는 적응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에릭 호나겔(Erik Hollnagel)은 Safety-II 이론에서 인간의 변동성을 제거해야 할 위험요인이 아니라 시스템의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또 시드니 데커(Sidney Dekker) 역시 인간 오류를 개인의 실패가 아닌 조직·환경·설계와 상호작용하는 구조적인 현상으로 분석하여 사고 예방의 핵심은 사람을 더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작업자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작업자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는 핵심 구성요소로 바라보는 최근의 안전관리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최근 산업안전의 핵심은 사람을 더 강하게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 사이의 인지 연결을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할 것인가에 있다.

현장의 계기판은 작업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위험 정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는가. 신규 투입 인력은 기존 작업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가. 작업표준서는 실제 현장의 작업 방식과 일치하는가.

데이터는 단순 기록으로 축적되는 데 그치는가, 아니면 위험 신호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흐름으로 작동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이야말로 향후 안전관리 수준과 조직의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가 될 것이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안전은 오랫동안 작업자의 주의와 행동통제, 위험요인의 제거와 감소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 데이터 기반 운영체계 및 인공지능(AI) 활용이 전 산업 분야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산업현장은 사람·기술·조직·데이터가 상호작용하는 사회기술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재해의 원인 역시 더 이상 개인의 실수나 행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향후 안전관리는 단순한 교육 강화와 법규 준수 중심의 접근을 넘어 사람과 시스템 간의 인지 연결과 정보 흐름을 어떻게 설계·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즉 위험정보의 실시간 공유, 실제 작업방식과 정합된 안전작업표준, 데이터 기반 위험 예측 및 분석, 조직의 회복탄력성 확보는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는 데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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