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법은 나름의 입법 목적을 가진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하청·특수고용 등 다양한 고용형태에서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두 법 모두 노동자 보호라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산업현장에서는 이 두 제도가 예상치 못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기업에게 하청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여한다. 원청은 위험성평가, 안전보건점검, 작업환경 개선, 안전수칙 준수 여부 확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청업체의 안전관리에 개입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력을 행사하는 경우 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작업방식과 작업환경에 깊이 관여할수록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사용자성이 인정돼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이를 우려해 개입을 줄이면 중대재해 발생 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안전보건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법률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현장에서 안전관리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 과거 산업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간 충돌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작업방법을 지도하거나 보호구 착용을 점검하는 경우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불법파견 또는 직접고용 의무를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산업안전 실무자들은 이를 '안전관리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안전을 관리하면 직접고용 문제가 발생하고 직접고용 문제를 피하려 하면 안전관리가 약화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최근 노란봉투법 논란은 이러한 과거의 경험과 매우 유사하다. 이번에는 "안전을 챙기면 직접고용 의무가 생긴다"는 문제가 아니라 "안전을 챙기면 교섭의무가 생긴다"는 새로운 형태의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의 적극적인 안전관리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는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 원청이 안전보건 확보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위험성평가 실시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며 유해·위험요인을 개선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법 자체가 원청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개입이 노조법상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활용된다면 기업은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관리 수준을 낮추려는 유인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26년 4월 30일 김소희 의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18736호)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매우 명확하다.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성 판단 규정에 단서를 신설해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따른 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른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는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으로 보지 않도록 명문화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부여한 법적 의무를 기업이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입법적 보완에 가깝다.
따라서 산업안전 정책은 안전책임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그 책임 이행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만약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실시하는 위험성평가 점검, 안전교육 지원, 작업환경 개선 요구, 보호구 착용 확인 등의 활동이 사용자성 판단의 근거로 활용된다면 현장에서는 안전관리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는 하청 근로자가 된다.
김소희 의원의 개정안은 바로 이러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평가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한 관리행위와 근로조건에 대한 사용자적 지배를 구분함으로써 노동기본권과 산업안전이라는 두 가지 공익적 가치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필자는 산업안전보건 컨설팅과 중대재해 예방 업무를 수행하면서 원청의 적극적인 안전관리가 산업재해 예방의 핵심 요소임을 수없이 확인해 왔다. 중대재해는 대부분 위험요인을 방치하거나 관리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반대로 원청이 현장을 자주 점검하고, 위험성평가 결과를 공유하며, 개선조치를 요구하고, 하청업체와 긴밀하게 협력할수록 사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안전을 위한 관리행위는 확대되어야 할 대상이지 위축되어서는 안 될 대상이다.
만약 원청기업이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을 우려해 안전관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추구하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와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그러한 측면에서 김소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18736호)은 안전보건 정책과 중대재해 예방 측면에서 충분한 정책적 타당성을 가진 입법안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동시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역시 어떠한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두 가치가 충돌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법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화시키는 것이다.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행위와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그러한 조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안전을 위해 행동한 기업이 그 행동 자체 때문에 또 다른 법적 책임을 우려해야 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요컨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조치가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기업이 법적 불확실성 없이 중대재해 예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안전과 권리가 함께 존중되는 산업현장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